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사람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광주 BF 키오스크 점검
저마다 규격 달라 사용 어려워
"BF 인증 기준 보완 필요 있어“

지난 8월 화정2동행정복지센터에 있는 BF 무인민원발급기를 사용하고 있는 강경화씨가 지문 인식 부분에 손을 대기 어려워하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제공.
지난 8월 화정2동행정복지센터에 있는 BF 무인민원발급기를 사용하고 있는 강경화씨가 지문 인식 부분에 손을 대기 어려워하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제공.

"손가락을 오래 대고 있기 어려워요. 지문 인증 자체가 안 됩니다."

지난 8월 광주 서구 화정2동행정복지센터. 뇌병변장애가 있는 강경화씨가 배리어프리(BF) 인증을 받은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멈춰 섰다. 본인 확인을 위해 지문을 찍어야 하지만 손가락을 오래 대는 것이 불가능해 필요한 서류를 뽑을 수 없었다.

BF 키오스크란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을 포함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 키오스크에 높낮이 조절, 수어·음성·점자·픽토그램과 같은 대체 수단을 더한 것이다. 장애인의 키오스크 접근 불가 문제가 심화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3년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시행령」을 개정했고 지난해 1월 28일부터 BF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했다. 처음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적용한 해당 법은 같은 해 7월 100인 이상 사업장, 올해 1월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BF 키오스크 의무 대상을 확대했다.

그러나 지난 8월 29일 6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광주에 있는 BF 키오스크를 찾아가 직접 사용해본 결과 ‘배리어프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이명호씨는 “BF 키오스크 규격이 통일되면 좋겠다"며 "지금은 BF 키오스크마다 키패드, 화면 구성 등이 달라 처음 사용할 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광주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주도한 이 활동은 장애인이 직접 BF 키오스크를 사용해보고 느낀 후기를 알리고 아직 BF 키오스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의 설치를 바라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활동을 기획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도연 주임은 "BF 키오스크 의무화를 알고 있었다"면서 "설치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장애 단체나 기관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정2동행정복지센터(무인민원발급기)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도서관(무인도서대여반납기) △풍암국민체육센터(무인발매기) 총 3개의 BF 키오스크를 직접 이용해보고 불편한 점을 공유했다. 이 활동에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필자도 함께했다.

공간 부족에 점자·음성 오류

이원신씨가 지난 8월 풍암국민체육센터에 있는 BF 무인발매기를 사용하려했지만 주변 우산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제공.
이원신씨가 지난 8월 풍암국민체육센터에 있는 BF 무인발매기를 사용하려했지만 주변 우산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제공.

장애인권옹호기관은 장차법 시행령에 있는 조건에 따라 △BF 키오스크의 휠체어 접근 공간과 감지 가능한 바닥재 △점자유도블록이나 음성안내장치 △수어·문자·음성 등 의사소통 수단 제공 △사용 안내문의 유무를 점검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점검한 3개의 키오스크 중 모든 조건을 따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원신씨는 화정2동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해 BF 무인민원발급기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전면으로는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키오스크를 이용하려면 측면으로 접근해야 했다. 그는 "화면이 하단으로 이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높다"며 "화면 상단의 메뉴를 선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BF 무인도서대여반납기를 사용해 본 이명호씨는 BF 키오스크에 점자가 있긴 했지만 얕아서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점자가 얕게 찍혀 있고 세로로 배치돼 읽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림과 같이 책을 올려 놓으세요'라는 음성 안내가 나왔지만 시각장애인은 그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했다"고 말했다.

음성 안내에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등 오류가 많았다. 기자가 풍암국민체육센터 BF 무인발매기를 사용해봤으나 시작 안내 멘트 반복 외에 다른 음성 지원이 거의 없었다. 또 '큰 글씨 모드'가 있었지만 이것 역시 화면이 바뀌면 적용되지 않았다.

우리 대학 본부 1층에 위치한 BF 키오스크도 사용해봤지만 실망스러웠다. 키보드에 있는 점자는 덮여져 있는 비닐커버 때문에 읽을 수 없었고, 음성 안내가 부족해 진행 상황을 알지 못했다.

BF, 정부와 업체가 풀어야 할 숙제

활동가들은 저마다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이원신씨는 "휠체어 측면 접근을 위해 키오스크 양옆으로 각각 1미터 이상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높이는 엘리베이터 휠체어 장애인용 버튼을 기준 삼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이나 문해력이 낮은 사람을 위해서 픽토그램처럼 간단한 그림이나 기호를 함께 표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명호씨는 키오스크 규격 통일을 강조했다. 그는 "키오스크마다 점자, 이어폰 단자 위치가 달라서 찾는 데만 시간이 엄청 걸린다"며 "점자는 진하게 돌출되어야 하고,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배치돼야 손으로 읽기 용이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성 안내는 "그림과 같이"가 아니라 "오른쪽 상단에"처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화씨는 생체 인증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개인정보 인증을 할 수 있는 대안으로 '휴대폰'을 언급했다. 그는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BF 키오스크 근처에 가면 휴대폰에 반응해 인증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BF 키오스크 의무화지만, BF 키오스크라고 당장 모든 장애인이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장차법 시행령에 명시된 조건을 따르지 않은 곳도 있고 오류도 많다. 도연씨는 "BF 인증 기준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BF 키오스크 생산업체가 풀어야 할 숙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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