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사람들
비장애인보다 키오스크 주문 시간 5배 걸려
뒷사람 기다린다는 부담감에 조급해하기도
도서관 무인반납기 “일어서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
사람 대신 주문을 받고 결제까지 하는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가 이제는 일상이 됐다. 키오스크는 코로나19 시기 인건비 감소와 비대면으로 주문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널리 확대됐다. 이제는 웬만한 카페와 식당에는 키오스크가 존재하지만, 키오스크 이용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시력이 좋지 않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키오스크란 일상생활의 장애물이다.
광주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도연 주임이 우리 대학에 요구한 정보공개청구 내용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우리 대학에는 여수캠퍼스 포함 총 50대의 키오스크가 있다. 지난 1일 기자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 김규리(국어국문·25)씨, 저시력 시각장애가 있는 김재현(영어교육·24) <전대신문> 기자와 함께 학내를 돌아다니며 일반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화면이 너무 높아 손을 멀리 뻗어야 하거나 글씨가 작아 휴대폰 카메라로 키오스크에 뜬 메뉴를 찍어서 보는 등 여러 불편한 점이 관찰됐다. 김씨는 “그동안 키오스크가 너무 높으면 잠깐 일어나서 주문을 했다”며 “휠체어에서 아예 못 일어나는 중증 장애인은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음료 한 잔 주문에서 결제까지 2분 30초
제1학생마루에 위치한 카페 ‘지젤’에서 김씨가 키오스크를 통해 메뉴 하나를 주문하는 시간을 세어보니 약 2분 30초가 걸렸다. 같은 메뉴를 키오스크로 주문했을 때 약 30초가 걸리는 비장애인에 비해 5배나 차이 나는 시간이었다. 김씨는 “화면이 높아서 누르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키오스크 화면이 잘못 눌리기도 했다. 김씨는 ‘아이스 모카치노’ 한 잔을 주문하려 했지만 도중에 잘못 눌러 3개의 메뉴를 선택한 뒤 2개를 취소한 후 주문을 진행했다. 뒤로 가는 버튼이나 메뉴를 옆으로 넘기는 버튼이 위쪽에 있어 손이 잘 안 닿고 다른 버튼을 누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여러 번 터치했지만 인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김씨는 “장애인들은 약용 치료를 받다 보니 지문이 약하다”며 “키오스크 터치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주문 오래 걸리면 눈치 보기도
학내 스토리움에 위치한 또 다른 카페 ‘카페나인틴52’에 방문했을 때는 손님들로 매장이 붐볐다. 김씨는 “학내에서 이용해 본 키오스크 중 여기가 가장 높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메뉴들이 뭐가 있는지 다 보고 싶었는데 너무 높아서 못 봤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니 뒷사람들 눈치가 보여 마음 편히 못 봤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도서관 키오스크를 이용할 땐 글자 크기가 큰 편이었는데 여기는 작아서 보기 어려웠다”며 “중증 시각장애인은 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메뉴 하나를 읽는 데 5초 정도 걸렸다”며 “오래 걸릴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키오스크를 거의 쓰지 않는다”며 “웬만하면 키오스크가 없는 곳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있어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은 곳은 불가피하게 키오스크를 쓴다”며 “방금처럼 손님이 많고 직원들이 음료 만드느라 바빠 보일 땐 말로 주문하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앉아서는 이용 못 하는 무인대출반납기
이날 이용했던 키오스크 중 가장 불편했던 키오스크는 정보마루(디도)에 있는 무인대출반납기였다. 몇 번을 시도하던 김씨는 책을 반납하기 위해 결국 휠체어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무인대출반납기도 다른 키오스크와 마찬가지로 화면이 높을뿐더러 책을 반납함에 넣으려면 안쪽 깊숙이 넣어야하기 때문이다.
무인대출반납기 화면에서 ‘반납’ 버튼을 누르면 바로 옆에 위치한 반납함의 사진이 뜨며 ‘한 권의 도서를 바코드가 위로 향하도록 넣어 주십시오’라는 문장이 뜬다. 김씨는 반납할 책을 반납함에 넣었으나 거리가 부족해 안쪽까지 넣지 못했다. 그러자 화면에 ‘책등을 안쪽으로 밀어 넣어주십시오. 다시 시도하십시오.’라는 문장이 떴고 책을 안쪽까지 밀어 넣기 위해 김씨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책을 넣었다. 김씨는 “반납하는 곳이 너무 높았다”며 “반납함 문이 언제 닫힐지 몰라 위험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예 못 일어나는 사람은 혼자 무인으로 책을 반납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중앙도서관(홍도)의 무인대출반납기는 접근성이 문제였다. 자동문 앞 널찍한 공간에 있던 디도 무인대출반납기와 다르게 홍도 무인대출반납기는 휠체어 하나가 겨우 딱 맞게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에 있었다. 문도 자동문이 아닌 여닫이문이라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휠체어 이용 학생 혼자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김씨에게 반납함의 위치가 너무 높았다.
손 닿고 글자 커 편한 재활용 회수로봇
이용해 본 학내 키오스크 7곳 중 휠체어에서 일어서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는 생활관 9동에 위치한 재활용 회수 로봇인 ‘슈퍼빈 네프론’ 단 한 대였다. 휠체어가 사용하기에 조금 높긴 했지만 화면과 글씨가 커 김씨와 김 기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김씨는 “마찬가지로 위치가 높아서 버튼 누르기는 힘들지만 닿는 높이”라며 “조작이 쉽고 복잡한 게 없어 이용하기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네프론을 처음 이용해 본 김 기자도 “글씨가 크게 나오고 내용도 단순해서 이 정도면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먼 BF 키오스크 설치
“재화ㆍ용역 등의 제공자는 제2항 각 호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무인정보단말기와 호환되는 보조기기 또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무인정보단말기 이용을 보조하는 인력을 배치하여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무인정보단말기를 동등하게 접근ㆍ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제10조의2의 3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개정된 장차법에 따라 우리 대학은 장애인 접근성 향상 차원에서 점자 블록, 이어폰 단자, 높이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배리어프리(BF) 키오스크를 설치해야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에 있는 BF 키오스크는 대학본부 1층 학생증명무인발급기뿐이다. 김씨는 “학내에 높은 키오스크가 많다”며 “휠체어 시점을 반영하여 키오스크 높이를 낮춰주면 다른 사람들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도 개정안에 따라 도서관의 BF 키오스크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올해 교체 예정인 키오스크는 단 한 대다. 도서관 관계자는 “지금 당장 전 기기를 바꾸기에는 빠르다고 느끼고 있다”며 “기간이 더 유예될 수 있는지 등 법적 상황을 확인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