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5월이 되면 명확해진다. 5·18민주화운동(5·18)과 관련된 수많은 논쟁이 불거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념 의례에 대통령이 참석하는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 참가자 전원이 부르는) 제창할지 아니면 (무대에 선 합창단만 부르는) 합창할지 등 매년 5월 18일에는 애도와 기념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쟁점이 주목받는다. 45년의 기간 동안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기억은 변화를 겪었다. 80년대 5·18은 폭동으로 인식되었지만 87년 민주화 이후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고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 과정은 기억 정치(memory politic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억 정치는 기존의 기억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다. 1980년 대학생과 시민들은 ‘5·18’이 주류 미디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폭동이 아님을 알려야 했는데, 그 과정은 진실과 허구가 대결하는 과정이었다. 희생자의 사진과 영상을 통해 알려진 진실은 군부 정권의 허구적 역사에 대립하는 대항 역사를 형성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5·18은 그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비공식적으로만 유통되던 폭력과 학살의 기억이 주류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청문회와 재판을 통해 처벌이 진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 역사적 기억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5·18의 명칭을 정하고, 기념 사업을 진행하고, 진실에 관한 규명 과정이 이어졌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통과로 발족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그러한 제도화 과정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그런데 기억 정치의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항 역사의 형성과 확산, 역사적 기억의 제도화로 끝날 줄 알았던 이 과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은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허위 사실 유포를 금지하고 있지만 5·18의 북한개입설을 믿는 이들이 여전히 있으며 유튜브와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북한개입 가능성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5·18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이념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해석과 이해는 단지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해석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이념과 가치,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령 현행 헌법의 전문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이전의 헌법(1980)은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군부독재 시기 4·19혁명의 민주이념을 헌법 전문에 쓸 수는 없었다. 어떤 경우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은 그 사회의 정체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5·18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역사적 사건에 관한 인식은 그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의 문제이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3일의 계엄과 그 이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여전히 민주주의의 가치가 시민이 힘써 지켜야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5·18에 관한 기억 정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에 부마민주항쟁, 5·18과 6·10항쟁의 민주이념이 포함되었던 것처럼 그 역사적 기억을 제도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개헌에 관한 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5·18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할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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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 정치외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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