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신문 1653호 학술
총여학생회, 여성가족부 그리고 팩트(F;ACT)
미투운동이 한창이었던 2018년, 역설적으로 대학가에서는 총여학생회 폐지의 바람이 불었다. 그 시작은 연세대학교의 총여학생회의 여성의날 기념행사였다. 당시 연사로 초청한 <이기적 섹스>의 작가 은하선이 ‘신성모독’을 했다는 주장이 일면서, 일부 학생들이 총여학생회 폐지를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대학에서는 지난한 논쟁의 과정을 거치며 총여학생회가 1년이 넘도록 존속했으나, 그사이 다른 2개 대학에서도 총여학생회 폐지가 이루어졌다. 2018년의 총여학생회 폐지는 대학 사회에서 백래시 전형의 양상을 만들어냈다.
백래시(backlash)는 반격을 뜻하는 영어단어로써 여성 운동사에서는 여성 인권의 향상에 대한 공격과 퇴행을 뜻한다. 미국의 대중문화비평가인 수잔 팔루디(Susan C. Faludi)는 제2물결 페미니즘이 성행했던 1960~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보수정권이 집권하며 가족주의적 기치 아래 미디어를 통해 “페미니즘이 여성을 불행하게 하고 국가를 망치고 있다”는 메시지가 성행했다고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2010년 중반 이후 #나는_페미니스트_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었지만, 곧 거센 백래시에 부딪혔다. 백래시의 양상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지만, 2018년 총여학생회 폐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양상 중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양상은 2022년 대통령 후보자의 ‘여성가족부 폐지’와 그리고 페미니즘 동아리 팩트(F;ACT)의 강등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기치와 제도를 활용하여 성평등을 폄훼하고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이 세 사건은 모두 얼핏 보이기에는 민주정치의 과정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양성이나 평등과 같은 민주사회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에 반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백래시
팩트(F;ACT)의 강등은 어쩌면 ‘한 동아리가 학칙에 어긋나는 활동을 했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전체동아리대표자대회에서 강등 조치’와 같은 한 문장으로 응축될 수 있다. 이 문장은 누군가 보기에는 아주 온당하고 합리적인 과정과 결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학칙에 어긋나는 활동인지, 그 학칙은 논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문제 제기의 과정이 합당한지 등을 질문하기 시작하면 팩트(F;ACT)에 대한 징계는 학내 민주주의 후퇴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먼저 문제가 되었던 활동에 대해 살펴보자. 발화점이 된 것은 팩트(F;ACT)가 학칙에 반하는 ‘외부 정치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정치활동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는 외부 정치단체와의 공동주관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주창했지만, 해당 행사가 진보정당과의 공동주관이라는 점은 대외적인 홍보물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또한 강연장에 입당원서가 비치되어 있었다는 ‘논란’ 역시 팩트(F;ACT)와 해당 연사가 모두 부인하는 것이다. 즉 징계 요구의 시발점이 된 논란은 명확하게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
무엇이 사실인지 혹은 진실인지 확인되지 않은 채로 주장이 그 자체만으로 ‘진실’로 힘을 얻는 것은 탈진실(post-truth)을 경유한 백래시 양상의 분명한 특징이다. 현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가? 한국은 OECD에 가입한 이후 줄곧 OECD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고,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19%에 불과해 IPU(국제의원연맹) 소속 국가의 평균 여성의원의 비율보다도 낮다. 그럼에도 대통령 후보자의 해당 발언은 일부 안티페미니스트와 보수 성향을 띠는 대중들에 의해 하나의 ‘진실’로 간주되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앞서 언급한 총여학생회 폐지의 신호탄이 된 은하선의 십자가 모양의 섹스토이를 판매·사용하여 ‘신성모독’을 하였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 대신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을 가르는 것은 첨예한 논증의 과정이 아닌 ‘숫자’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와 팔로워의 숫자, 기사의 조회수, 에브리타임의 추천과 신고의 숫자가 진실의 기준이 된다.
더욱이 질문해야 하는 것은 대학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이다. 학문과 지식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역사 교과서’ 논란이나 세계 모든 곳의 정치적 혼란기와 변동기에 수차례 ‘금서’ 조치가 내려진 까닭은 지식이 무엇보다도 가장 정치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은 지식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 공간이다. 피선거권을 부여받은 정치적 시민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외부 정치활동’의 금지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외부’가 문제라면 여러 기업체와의 협력사업이나, 외부 종교의 한 분파로 운영되는 종교 동아리의 활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오히려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학칙이 정당정치에 대한 혐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팩트(F;ACT)의 동아리 강등은 백래시이기 때문에 나쁘고, 기존의 잘못된 학칙에 대한 반문의 여지를 소거시켰다는 점에서 더 나쁘다.
백래시는 민주주의의 퇴보
선거의 시즌이 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수사가 남발하지만, 실상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장치일 뿐 민주주의 그 자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오히려 투표는 ‘yes or no’ 혹은 몇 개의 정해진 선택지만 제시하며 그사이 숙의의 가능성을 삭제해버리기도 한다. 혐오에 기반한 정서나 가짜뉴스가 선거와 결합했을 때는 최악의 선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세계 최악의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는 유태인 혐오를 활용하여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탈진실(post-truth) 정치의 대표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일부 백인 남성들의 유색인 이민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 삼아 국가 수장의 자리를 획득했다.
총여학생회 폐지, 그리고 팩트(F;ACT)의 강등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의 백래시는 주로 에브리타임과 같은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연서명을 통해 안건을 발의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검증은 생략되고, 일부 절차적 부정의(injustice)는 ‘다수’의 이름으로 간과되며, 투표라는 최종 결정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매우 ‘민주적인’ 학내 정치의 과정으로 탈바꿈된다. 그러나 실상은 소수자의 목소리와 토론의 과정을 뭉개버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이는 여성가족부 폐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백래시의 정치>를 출간한 신경아 교수는 현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정책이 여성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탈민주화와 백래시 속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근거 없는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 내 백래시를 다룬 <여성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 동아리 팩트(F;ACT)’는 이전에도 에브리타임에 팩트의 홍보 글을 올렸다가 신고 조치로 글이 삭제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게시글에는 모욕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어쩌면 이 사실이 팩트(F;ACT)가 징계를 받아야 했던 까닭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캠퍼스에 팽배했던 페미니즘 동아리에 대한 괄시와 혐오가 팩트(F;ACT)가 강등되어야 했던 진짜 이유는 아닐까?
하지만 게시글은 삭제될 수 있을지언정 캠퍼스의 페미니즘 활동과 그 가치는 삭제될 수 없다.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자생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 페미니즘이라는 가치는 어느 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학교·가정·일터와 같은 사회 곳곳에 차별과 혐오가 가득 찰 때, 불편함과 부당함을 느끼는 저항의 정동이 모여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탈진실에 맞서 학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전남대 페미니스트들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