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보존‧예술인 양성…타이중 문화 지키는 옛 양조장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도시, 타이중 ➀ 문화창의산업단지

2025-09-01     대만/고민서 이의진 기자

산업 유산 보존하는 유럽 벤치마킹
“상업적 목적 대신 문화유산 지키려”
청년 예술가에 공간 지원
일제강점기 건물 그대로 활용

‘도시재생’이란 쇠퇴하는 도시를 대상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도시를 활성화하는 것을 말한다. 근대화 이후 한국은 수도권 중심화가 심해지며 지방 도시의 쇠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만 또한 고령화, 인구집중으로 지역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지역의 인구는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의 매력을 높이는 도시 재생 사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 타이중의 문화창의산업단지(문화단지)와 심계신촌은 버려진 근대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장소지만 지역의 매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지난 7월 8일과 9일 <전대신문>이 두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각 장소의 매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문화창의산업단지에서 양홍상 문화부 문화단지 담당 과장과 인터뷰하는 모습. 문화단지 직원이 중-영 통역을 맡았다.

세로로 길쭉한 망고 모양인 대만. 맨 위에는 수도 타이베이가, 맨 아래에는 ‘대만의 부산’이라 불리는 가오슝이 인기 관광지로 자리잡아 있다. 도시재생 사례를 들여다보기 위해 다녀온 타이중은 타이베이와 가오슝 사이에 위치한, ‘타이완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대만에서 3번째로 큰 도시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1시간, 타이중 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어가면 마을 공원 같은 문화단지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절 세워져 운영됐던 양조장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이 공간에는 일본과 유럽, 대만이 공존하고 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일본인에서 대만인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던 양조장은 2000년대 초반 공장이 이전하고 10년 이상 방치돼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었다. 대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설 뻔 했지만 대만 문화부는 이곳을 철거하는 대신에 문화유산을 유지하고 역사를 지키는 문화단지로 만들었다. 양홍상(楊宏祥) 문화단지 담당 과장은 “아시아는 유럽보다 전통 보존에 소극적이다”며 “세계 대전 이후 산업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유럽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개발보다 역사 보존 택한 문화부

문화단지에는 남아있는 공장들 사이에 긴 파이프들이 연결돼 있다. 이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원료나 물을 효율적으로 이동시켰던 흔적이다. 재료들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던 기차 철도도 볼 수 있다. 쌀을 찌는 작업을 해 양조장의 중심 건물이었던 보일러실은 여전히 남아 문화단지 상징물이 됐다.

양홍상 과장은 “다른 문화단지들과 달리 이곳은 상업적 목적이 거의 없다”며 “문화유산을 유지하고 역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옛날 그대로 유지, 보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단지에서는 건물과 유적 등 유형 유산부터 타이중의 전통 예술, 문화같은 무형 유산도 보존 및 계승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는 공식 ‘문화유산파크’로 자리 잡기도 했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지난 7월 8일 타이중 문화창의산업단지에서 공예 체험하는 시민 모습.

공장 건물 내부에는 △전시장 △카페 △공예방 △박물관 등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있다. 지난 7월 8일 방문했을 당시에는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 사진 전시 등을 볼 수 있었다. 입주한 예술가들은 우산, 인형 같은 생활 소품부터 반지, 전통의상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고 판매하고 있다.

문화단지 초창기에는 디자인, 건축, 인테리어 등 분야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양홍상 과장은 “청년 예술가들은 항상 예산과 공간이 부족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파크가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난 지금도 이 정책은 유지되고 있다.

청년 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해 디자인 공모전을 열거나 주민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 전시와 축제 등을 열기도 한다. 소규모 플리마켓이나 행사는 주말마다 문화단지 중앙 정원에서 누구나 열 수 있다. 디자인 공모전은 매년 5월에, 문화 예술 축제는 9월마다 열린다.

전통 계승하는 교육기관 역할도

문화단지는 단순한 역사 보존, 전시 공간을 넘어 전통 예술 계승과 교육의 장 역할도 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인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전통 공예와 공연 예술을 배운다.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을 받아 국내외에서 장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전통 예술 분야는 △악기 연주 △수공예 △인형극 등 다양하다.

그러나 전통문화 예술인들은 매년 줄고 있다. 오랜 장인들은 점점 나이가 들고, 청년들은 더 이상 전통 예술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단지 가이드 천취안취안(陳全全)씨는 “전통 예술은 숙달하는 과정이 길고 어렵다”며 “게다가 장인이 되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청년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 삶 일부가 된 랜드마크

가이드 천취안취안씨와 함께 문화창의산업단지를 둘러보는 모습. 취안취안씨가 신문방송사 기자들에게 문화단지에서 보존하고 있는 심해 유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은퇴 후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시야(Xi ya, 60)씨는 “사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고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랜드마크로서 공간 활용을 하기 위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했던 평일 오후, 주민들은 공원처럼 산책을 하거나 전시를 보며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평일에는 2-300명이지만, 주말이나 행사 기간에는 2-3천명까지 늘어난다.

문화단지에서 만난 가이드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지난 2013년부터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취안취안씨는 집에만 있기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일을 시작했다. 그는 “돈을 받지 않고 일하니 압박이 적어 행복하다”며 “언제나 즐겁게 일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들은 수당은 받지 않고 식사만 제공받으며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 문화단지는 주민들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어 마을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흔적 보존하는 5대 문화창의산업단지

대만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제강점기 시절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기고, 1910년 강제 병합되어 해방 때까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썼다. 반면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 패전의 결과로 청나라가 일본에 대만 영토를 넘겨 ‘행정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지역’으로 통치됐다. 이에 일본 통치를 비판하는 경우와 받아들이는 경우가 공존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산업 발전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남아있다. 시야씨는 “대만인들은 일본인의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인의 음식을 좋아한다”며 “일본이 대만과 가깝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역사적 유산을 문화적‧교육적 자산으로 두고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식 문화가 남아있는 건물들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문화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창의산업단지는 타이중 외에도 △타이베이 화산 △타이베이 쑹산 △타이난 블루프린트 △치아이 5곳이 있다. 이곳에서 일본과 대만, 중국 등 다양한 문화를 한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대만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대만인들은 중국어를 하는 일본인 같다”고 말했다. 친절하고 조용한 일본인의 특성이 대만인에게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화가 깊이 남아있는 채로 시간이 흘러 대만은 일본과 중국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특히 문화창의산업단지와 같이 일본의 흔적 그대로 보존한 곳에서는 그 특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

※이 기사는 2025 오만기행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