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데?”

연애보다 자기계발…케이팝 ‘유사 연애’ 더 즐거워

<한국일보>가 2023년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절반 세대(2001~2004년 출생) 연애·결혼·출산 인식조사>에서 절반 세대(조사대상 500명) 4명 중 3명인 74%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서는 “연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의견이 63.1%를 차지했다. 우리 대학은 어떨까? 우리 대학 10명의 솔로에게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들었다. 인터뷰 대상은 남학생 5명, 여학생 5명, 인문사회계열 5명, 자연과학계열 5명으로 나누었고 10명의 이름은 가명 처리했다.

인문대 남자 신입생 연준씨는 학업, 과 생활, 동아리 그리고 외국어 학원 등 하루 일정이 빼곡하다. 그의 목표인 교환학생을 위한 준비로도 바쁘다. 그러다 보니 그는 연애 생각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학점을 최대한 잘 받아서 취업에 유리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인문대 여자 신입생 민정씨는 반수를 했고, 이번이 두 번째 대학 생활이다. 그녀는 1학년일수록 더 치열하게 활동해야 취업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을 시간도 부족하다”며 “연애보다 나 자신에게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연애를 떠올리면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감당해야 할 것이 많다고 느껴진다”며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에 비해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농생대 여자 신입생 주현씨도 “대학에 가면 하자고 결심했던 외국어 공부나 취미생활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인간관계에 리스크를 만들지 않고 싶다”며 “연애보단 덕질과 외국어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과대 동영(건축·24)씨는 학과 특성상 밤샘을 많이 한다. 누군가에게 밤은 연인과 산책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낭만의 시간이지만 그에게 밤은 과제의 시간이다. 그는 “딱히 누군가를 만날 생각도 없고 바쁘다”며 “밤새우는 작업이 많아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상대방을 신경 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민(경영·24)씨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다”며 “또한 범죄에 휘말릴 위험을 감수하고서까지 만날 자신이 없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원필(인공지능·25)씨도 “데이트 폭력이나 불법 촬영 문제들도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연애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버블’ ‘DM’은 케이팝 아이돌과 ‘유사 연애’를 할 수 있는 통로다. 이를 공략하는 마케팅도 많다. 예술대 24학번 지수씨는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에 한창이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귀어 콘서트에 가거나 아이돌의 생일 카페(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이나 데뷔일를 축하하기 위해 카페를 대여해 내부를 아이돌 사진, 굿즈 등으로 꾸미고 운영하는 이벤트), 기획사의 팝업 전시 등을 구경하면 매일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덕질을 하면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세븐틴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대 여자 신입생 시온씨도 “굳이 연애에 돈이나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아이돌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답했다. 민정씨도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겁다”며 “덕질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연애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훈(경제·25)씨는 낯선 대학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어른의 삶’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더 어렵게 느껴진다”며 “오랫동안 친구를 못 만나면 어떻게 친해졌는지 잊게 되는 것처럼 연애도 언젠가 해봤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대 남자 신입생 원빈씨는 “삶을 살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온다”며 “그때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정말 든든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돈을 상대방에게 쏟아야 한다는 것이 무력하게 다가온다”고 전했다.